멸치와 우주와 별의 만남

 

코스모스의 어느 바닷가 위로 별빛이 쏟아지고 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황혼을 맞이한 고양이가 누워있다. 어느 방랑자의 낡은 신발을 베개 삼아(길 위의 별 1 – 모모). 나는 수십 억 년을 거슬러 잠시 시간 여행을 한다. 수풀과 관목과 허허벌판 가득한 원시의 사바나를 지나서 가스와 성운과 항성으로 가득한 별 무더기 속으로. 우리가 최초로 잉태된 곳. 모든 사물이 최초로 잉태된 곳. 우리 모두는 그곳으로부터 잉태된 후 지구 행성에 던져졌다. 이 행성에서의 생을 마감하면 어느 초신성의 일부로 불타오르다가 다른 생명체의 DNA가 돼서 지구에 환생한다. 

바카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멸치는 생명의 무한순환을 매개하고 있다. 왜 멸치였을까? 바카 작가는 스스로를 가장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멸치를 만났다. 그녀는 작가로서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고 멸치는 죽은 미라였다. 죽은 사람과 죽은 멸치의 만남. 그런데 이 죽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그녀는 멸치를 관찰하고 그려나가면서 치유를 받고 영감을 얻었다. 마치 죽은 별의 잔해인 초신성에서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것처럼. 들끓는 마그마의 폭발이 모든 것을 재로 이끌면서 동시에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것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과 바위 그리고 땅속 깊이 뒤엉켜 있는 새로운 식물의 탄생. 따라서 그녀에게 멸치와 우주와 별의 만남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운명적인 사건이다.  

초신성 폭발의 폭풍전야 속에서 멸치는 생명과 미를 획득한다. 최초의 멸치는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식탁 위에 놓인 마른반찬, 공사장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서민의 벗이었다. 하지만 그 멸치는 이제 각각의 구체적 장소와 사건에서 해방되고는 생명의 순환을 매개해준다. 개별자의 위치에서 보편자가 되면서 멸치는 자신 안에서 죽은 채 잠들어 있던 조형미 또한 발견한다. 멸치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장 좁은 곳에서 가장 넓은 곳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높고 낮음, 넓고 좁음, 삶과 죽음이 배척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Big Bang'은 이 점을 잘 드러낸다. 멸치는 본래 주변부에 머물러있는 죽어 있는 존재지만 빅뱅의 세계에서는 근원적이고 살아있는 에너지로 거듭난다. 볼품없는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이로써 멸치는 구원자의 지위를 얻게 된다. 

전작에서 작가는 멸치를 예술의 장으로 끌어들인 후 그 위에서 상사(相似)의 놀이를 하면서 시뮬라크르의 미학을 펼쳐냈다. 그곳에는 시점을 뒤집는 참신함과 대범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멸치를 관념에 정직하게 이입함으로써 관념과 멸치가 일대일 대응에 머물고 작품은 전체적으로 이데아 속에 갇혀버렸다. 반면 이번 작품 속의 멸치는 전작보다 더 근원적인 세계를 다루지만 오히려 리얼리티의 손실은 줄였다. 그리고 땅을 향해 한 발자국 전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작 이후에 작가가 겪었던 방황과 고민의 대가다. 멸치라는 소재는 태생적으로 사물을 일차함수로 투영할 운명을 지닌다. 그 위험을 지혜롭게 비켜나가면서 멸치를 통해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세계를 창조하는 것. 이차함수·삼차함수로 형상화해내는 것. 그것이 작가에게 주어진 과제다. 개인적으로는 ‘Happy Birthday 3'과 ‘별의 여행 1'에서 가능성을 엿보았다.

황혼을 맞이한 고양이 ‘모모’는 머지않아 초신성의 잔해가 될 것이다. ‘모모’가 베개 삼았던 신발의 여행자도. 그들은 언젠가 또 다른 모모와 여행자로 만날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렇게 만났고 지금도 그렇게 만나고 있고 먼 훗날에도 그렇게 마주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모모’고 ‘여행자’다. 그리고 ‘멸치’고 ‘별’이다


- 김시혁 2019.12